[전영범의 별 헤는 밤] 여름밤 별보기

입력 2021-08-18 17:41   수정 2021-08-19 00:10

천문 관측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날씨 예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천문대로 전화를 걸어 날씨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만난 친구들은 으레 인사랍시고 요즘 날씨 왜 이렇냐고 물어보곤 한다. 좀 더 거창하게 지구 환경 변화에 대한 답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주 만나는 친구는 이미 여러 번 핀잔을 들어서인지 안 물어본다. 천문학은 지구 대기권 밖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일단 하늘이 맑아야 별을 볼 수 있다. 물론 우주망원경은 시간 제약 없이 24시간 내내 별을 볼 수 있다.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밀려나고 새로 장마가 시작된 듯 근 열흘 이상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연구실 창밖의 빗소리가 듣기 좋고, 종종 눈을 식힐 겸 밖으로 나간다. 산 아래, 멀리서 보면 작게 떠다니는 구름도 산 정상에 걸리면, 천문대는 짙은 안개에 싸이게 된다. 한순간 구름이 밀려나면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고, 그 순간 멋진 운해가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노을빛이 더해져서 더 멋있다. 간혹 저녁 햇살이 낮게 비치는데 약한 빗방울이 떨어지면 무지개가 멋있게 뜨기도 한다.

여름밤 별 보기는 은하수가 최고다. 남쪽 하늘에서 곧게 솟아올라 머리 위를 가로질러 북쪽 하늘까지 이어지는 은하수는 별 보는 사람에겐 최고의 관측 대상이다. 그런데 하늘이 어두워야 은하수를 잘 볼 수 있는데 달이 밝으면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믐 전후나, 보름달을 넘긴 뒤 달이 뜰 때까지의 어두운 하늘이 좋다. 초승달이 지고 난 하늘도 어둡지만 달이 지는 시간이 늦어지고, 무엇보다 은하수와 달이 점점 가까워져 은하수 보기가 안 좋다. 그래서 보름달이 지나 달이 뜨기 전까지 매일 50분씩 더 오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시기가 좋다.

한여름 보름달 지나 은하수 보세요
보름이 이틀이 지난 7월 26일 밤, 하늘이 어두워지고 곧바로 나가보니 벌써 커다란 달이 수평선 위로 벌겋게 뜨고 있었다. 반대쪽 하늘을 유심히 보니 전갈자리가 영천 시내의 불빛 위에 떠 있었다. 궁수자리도 쉽게 찾았는데 그 가운데 보여야 할 은하수가 영 안 보였다. 도시의 밝은 불빛에 더해 달이 뜨면서 밤하늘이 더 밝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척 습한 날씨도 영향을 준 듯했다. 그래도 전갈자리 왼쪽에 은하수가 놓여 있음을 알고 있기에 전갈자리를 적당히 시야에 넣어서 하늘을 찍으니 은하수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머리 위의 백조자리까지 은하수가 이어지는 모습을 눈으로는 못 보고 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다. 이틀 뒤에 다시 하늘이 맑아져서 나가니 달이 뜨고 있는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이틀이 지나 달이 1시간40분가량 늦게 떴지만, 하늘이 그만큼 늦게 맑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미련 없이 그냥 포기한다.
페르세우스 유성우와 오리온자리
여름철엔 유난히 유성을 많이 본다. 아마도 페르세우스 유성우 때문일 것이다. 유성우 시기가 돼 유성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시점을 극대기라 하는데, 올해 페르세우스 유성우는 8월 13일 새벽 4시께가 극대기여서 밤을 꼬박 새워야 할 상황이었다. 보통은 1주일 전쯤부터 간간이 멋있는 유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날씨가 맑으면 유성을 보려고 잠을 설친다. 하지만 올해는 날씨가 도와주질 않아 밤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극대기 날에는 계속 구름이 지났고, 안개가 덮쳤지만, 꼬박 밤을 새웠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은하수가 살짝 보여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면서 카메라 네 대를 설치해 두고, 수시로 렌즈에 맺힌 이슬을 닦았다. 머리 위에서 번쩍하면서 눈앞으로 유성이 떨어졌다. 얼른 카메라를 살펴보니 절반만 찍혔다. 2016년 여름의 멋진 유성우를 본 이후로 달의 밝기가 어두워서 가장 좋은 관측 조건이었지만 날씨는 아주 안 좋았다. 몇 번이나 안개가 짙어져서 포기하려다 조금 더 기다리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카메라 화면이 밝아졌다. 동쪽 하늘을 보니 살짝 여명이 느껴졌다. 그런데 옅은 구름을 비집고 떠오른 오리온자리가 멋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그 위로 황소자리와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도 보이고, 왼쪽으로 마차부자리가 높게 떠 있었다. 대표적인 겨울철 별자리들이다. 여름 새벽에 느낄 수 있는 생소한 기분이다. 무더운 여름에 겉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서늘한 기운을 받으며 밤새 겨우 두 개의 유성을 카메라에 잡았다. 아쉽게도 눈으로 본 밝은 유성은 인공위성이었다.

1.8m 망원경의 마지막 정비 일정은 별을 봐야 끝나는데 날씨가 맑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하반기 관측 일정이 시작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은 더 지루한데 멋진 유성우와 여름 은하수가 기분을 달래준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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